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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옇다 못해 캄캄하다

생각

by forever-nini 2021. 11. 6. 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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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이면 집도 있고 차도 있을 줄 알았다
어릴적 아빠가 할머니한테 했던 것 처럼, 나도 이나이 쯤이면 내 부모님을 봉양까지는 아니더라도 받은 걸 돌려드릴 수 있을 정도의 경제력은 갖추게 될 줄 알았다. 근데 그렇게 되는게 참 힘들다. 

90년대 초반생들은 역대 가장 힘든 한국을 살아내려고 태어난 세대이다. 어릴적 IMF를 겪고 2008년 경제위기, 사스, 메르스, 에볼라, 그리고 지독한 코로나까지. 걷기 시작한 때부터 고난이 펼쳐졌으며 최악의 입시제도와 취업률을 뚫어야 하는 세대이다. 나는 운좋게도 악명높은 헬조선의 입시와 취업을 적당히 돌파해 내 이름 들으면 아는 대학, 이름 들으면 아는 대기업에 입사했다. 그럼에도 눈앞이 뿌옇다 못해 캄캄하다. 뿌옇게 경계를 흐리고 있는 이 사진이 서른을 맞이하는 지금 내 마음과 비슷하다.

일가 친척 중 가장 좋은 대학을 졸업해 놓고, 아무도 가지 못한 대기업을 어린나이에 입사해 놓고도 내 자신 하나 건사하지 못한 모습을 보여드리기가 차마 부끄러워 오랜만에 부모님을 만나더라도 잘 지내는 척을 한다. 사실 잘 지내고 있지 못한 것 같다. 이게 맞는 건가 싶고, 하루하루 달라지는 내 몸상태를 받아들이기 힘들어 퇴근 후 집에오면 쓰러지는 내 자신이 한심하고, 부업에도 도전해 보지만 이것도 잘 해내고 있는 건지 뿌옇다. 가끔은 시험결과처럼 '이건 맞고 이건 틀려서 너의 점수는 몇점이다' 라고 말해줬으면 좋겠다. 그런 명확한 배점방식과 피드백이 익숙했던 학생에서, 배점방식도 피드백도 모든게 모호한 직장인이 되니 무엇을 어떻게 고쳐야 더 나은 방향으로 나갈 수 있을지 판단하기가 어렵다.

부모와 자식이 같이 살 수 있는 시간은 생각보다 짧다. 우리집은 네가족이 모두 모여 산 시간이 5년밖에 되지 않는다. 남들은 당연히 가족끼리 사는 거지만 우리는 그게 참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래서 지금 나라도 자리를 잘 잡아서 우리 가족이 함께 보내는 시간을 늘리고 싶었다. 너무 늦기전에.

그게 내가 지금 열심히 하는 이유이다. 지금 일찍 자면 미래의 내 시간이 줄어든다 생각하고 오늘을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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